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6.25 전쟁 학살/유엔군, 국군, 미군, 우익 (문단 편집) ==== 왜 자료가 없어졌는가? ==== >'''쿠데타 세력은 관련 기록을 모조리 압수해 파기해버렸고''' 피해자 무덤까지 파헤쳤다. >---- >[[http://busan.grandculture.net/Contents?local=busan&dataType=01&contents_id=GC04205495|부산향토문화백과: 동래피학살자합동장의위원회 사건]] >5.16 직후 남제주의 백조일손 묘역에서, 거창 신원면 묘역에서, 경남 진영의 피학살자 묘역에서, 그밖의 수많은 곳에서 위령비가 파손되고 공동묘역이 파헤쳐지고, '''희생자 명단과 많은 증거문서들이 압수돼갔다.''' >---- >유골발굴일지와 유골 수집철, '''피학살자 조사명부''', 유족회원 가입명단, 학살자 고발장, 유골 상자 등 학살진상규명에 결정적 단서가 될 관련 '''기록물들을 남김없이 압수, 폐기'''하여 (5.16 군사정부 포고령 제18호) 이후의 학살 진상조사를 원천 봉쇄했다. > >또 피학살자들의 합동 무덤을 파헤쳐 유골을 불사르거나 바다에 내다버리고 비석을 뽑아 부수는 부관참시까지 자행했다. > >이로써 민간인학살은 다시 입 밖에 내서는 안 되는 금기 중의 금기 사항이 되었고, 1987년까지 강요된 침묵의 세월이 계속되었다. >---- >유족회[[http://coreawar.or.kr/xe/page_0201|#]][[http://coreawar.or.kr/xe/page_0403/77992|##]] >피학살자들의 합동묘와 묘비는 자의적으로 ‘용공’ 또는 ‘이적선전물’로 규정되었으며 단순한 행정명령으로 제거되었다. '''유족회에서 받은 유족들의 피해신고서류처럼 학살의 증거가 되는 물품들은 유족회의 ‘용공행위’의 증거로써 대부분 압수'''되었고 ‘혁명재판’ 이후에 인멸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학살의 은폐 작업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그것은 피학살자 유족처럼 대한민국의 국시인 ‘반공’ 이념의 피해자들이 주체화되는 것을 막고 그들의 운동이 국가 권력이나 국가의 공식적인 기억에 도전하는 것을 원천봉쇄하기 위함이었다. >---- >[[https://riss.kr/search/detail/DetailView.do?p_mat_type=be54d9b8bc7cdb09&control_no=bedda9626e51b83bffe0bdc3ef48d419&keyword=%ED%94%BC%ED%95%99%EC%82%B4%EC%9E%90%EC%9C%A0%EC%A1%B1%ED%9A%8C#redirect|이창현, <1960년대 초 피학살자유족회 연구>]] 즉 유족 잘못이 아니라 5.16 쿠데타 세력의 탄압으로 사라졌다. 5.16 쿠데타 세력이 희생자 명단을 압수한 후 폐기해서 113만명의 신고자와 학살 피해자 명단을 볼 수 없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